나를 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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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깁다




거울 속에 꿈틀거리는
날개 같은 것이 한 자루 가득
쉼 없는 쉼을 위해 얼굴을 가리고 있다
어디서부터 마름질이 어긋난 걸까
햇살 바늘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며
박음질부터 해댄다
담장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유년의 얇은 천과
날고 싶어 하는 날개가 청춘을 누비며
한 벌 몸뚱이를 깁는다
어디를 가나 모습과 질감이 똑같은,
어지간한 오염에도 물들지 않는 원단
늘 빡빡 문질러서 빨아야하리
그러나 따뜻한 손길이나 입술엔 취약해
고문 단속을 당하기도 한다
나를 가리고 있는 천을 수선할 때마다
빗방울처럼 떨어져 번지는 눈물
무명의 노루발로 박음질을 하는
난, 한 폭의 생을 깁는다

- 이혜민, 시 '나를 깁다'


박음질 잘된 나를 상상합니다.
어느새 올이 낡아, 전신이 흐트러지고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때 절은 나.
한순간 유년처럼 순수해지지는 않지만
나간 올을 가다듬어, 다시 깁는 하루.
그렇게 사람도 옷처럼 다시 수선해서 감쪽같아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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