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페이지 정보

본문

 

포도




늦여름까지 자신을 익히는 과일은
생각이 깊다
별도 없는 밤처럼 검고 깊은 맛이 난다
한 알씩 깨물 때마다
누군가의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다
그 방은 창이 없고, 낮은 책상만 있어
단단한 삶을 숙성시키기에 좋다
어린 포도는 세상을 듣는다
태양이 바글거리는 소리
다시 서늘하여 나무로 젖는 소리
몸을 굴린다, 가슴을 굴린다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단것을 밝히는 벌레가 노트를 넘겨주고,
방방의 반성이 푸르다
나날이 일지가 둥글다
귀퉁이가 집어지는 일은 잘 없어,
황혼이 두 손을 모은다
울컥하는 순간, 한 권의
아름다운 삶이 당도할 것이다

- 고은수, 시 '포도'


무더위를 지나면서
이 더위에 익어가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홀로 어둠을 견디며 자신을 익혀가는 것들.
그래서 잠깐 이 어려움을 견뎌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