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한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말하는 문재인정권의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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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석종현논단>

퇴임한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말하는 문재인정권의 인종차별

 

 

 

 

문대통령은 국회의원이며 대선 후보이던 201212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인권정책 10대 과제중 하나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꼽았고 이를 발표하며 국가가 단 한 사람의 인권도 소홀히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 밝힌바 있다.

 

그 약속을 한 사람이 현직 대통령이고 그 정부 여당이 지금 국회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대통령조차 '일부'라 칭한 소수의 횡포에 눈치보며 종교기관 예외조항을 넣겠다는 시도나 제정과정에 동참하길 꺼리는 등 더불어민주당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퇴임 전 가진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국 내) 인종 차별에 대해 많이 놀랐다는 말을 했다.

 

 

 

일본계 미국인인 그는 재임 중 한일 갈등 격화로 인해 강성 친여(親與) 지지자들로부터 인신 공격을 당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재임 중 한일 갈등 격화로 인해 자신이 올가미에 걸릴지는 몰랐다며 일부 인종 차별(race baiting)에 대해 놀랐다고 했다. 해리스 대사는 미 해군 출신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고, 미 해군 태평양사령관을 거쳐 지난 20187월 주한 미 대사에 임명됐다.

 

 

 

그의 재임 중 친문(親文) 지지자들은 인터넷에서 해리스 대사가 일본계라는 점을 부각하며 일본놈 피가 흘러 찌질하다” “일왕에게서 훈장 받고 주한 대사 부임한 X”라고 했다. 그가 기른 콧수염도 인신 공격의 대상이 됐다. 또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그를 향해 조선 총독으로 빗대 외교적 결례 논란이 일었다. 이후 해리스 대사는 콧수염을 면도했다고 밝혔다.

 

 

 

한편 해리스 전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이루어진 세 차례 미·북 정상간 회동에 대해서는 나는 어려서 공상 과학 소설을 읽었지만 이런 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자신의 카운터 파트 중 한명 이었던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는 방위비 분담금 등을 놓고 모든 사안에 동의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이런게 하나하나 쌓여 우정(friendship)이 됐다고 했다.

 

 

 

 

 

야누스의 얼굴/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Janus-faced라고 쓴다. ‘옥스퍼드사전은 그 뜻을 deceitful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협잡(挾雜),사기(詐欺), 허위(虛僞) 등을 나타내는 형용사(形容詞)이다.

 

 

 

이런 형용사로 표현되는 일은 대저 유쾌하지 못하다. ‘야누스는 원래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인물이다. 고대 로마의 동전에 새겨진 그 실상(實像)을 보면 머리는 하나인데 얼굴은 둘을 가지고 있다. 그 두 개의 얼굴은 같은 방향(方向)을 보고 있지 않고, 서로 반대(反對)방향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야누스()의 표장(標章)열쇠몽둥이이다. 열쇠는 문()을 여닫는 구실을 하며 몽둥이는 남을 쫓아버릴 때 쓰인다. ‘야누스는 그러니까 자신의 이해(利害)에 따라 남을 때려 내쫓기도 하고, 또 문을 열어 맞아들이기도 한다.

 

 

 

로마신화에 따르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아직 분화(分化)하지 못한 한 덩어리의 혼돈(混沌)상태에 있다가 저마다 혼돈(카오스)에서 갈려 나가게 되자 카오스야누스로 되었다 한다. ‘야누스의 얼굴이 두 개인 것은 그 원래의 뒤죽박죽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치인(政治人)의 이름 앞에 /‘야누스의 얼굴/이라는 말이 붙으면 결코 영광된 이름은 못된다. 정치인들이 모인 정당(政黨)도 예외(例外)일 수는 없다. /‘야누스의 정당/이란 바로 자기모순(自己矛盾), 아니면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정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의 어원(語源)에서 비롯한다. ‘이란 /한다/는 뜻이다. ‘정치는 당연히 /을 행하여 다스린다./는 의미(意味)가 된다.

 

 

 

()나라의 실권(實權)을 쥐고 부정(不正)을 자행하던 季康子(계강자)가 정치의 묘책(妙策)을 공자(孔子)에게 물어 본 일이 있다. /을 의미한다. 그대가 위에 서서 먼저 정도(正道)를 가면 그것이 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孔子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正道를 가지 앉는 정치는 국민의 관심 밖에 있다. ‘正道란 현대의 민주정치에선 국민과의 신의(信義)를 말한다. 따라서 그 신의를 저버릴 때 이미 정치는 正治가 아니다.

 

 

 

정치무관심(政治無關心)은 현대 정치의 비극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것은 정치를 날로 관료화(官僚化)하며 행정화(行政化)해 가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정치는 국민부재(國民不在)의 상황에 있게 되며, 대화(對話)와 설득(說得)의 길은 가로 막히게 된다. 정치무관심의 다음 단계는 아노미현상이라고도 말한다. 이때는 벌써 이성(理性)의 상태는 아니다. 결국 정치무관심의 화()는 언젠가 정치인 자신들에게 돌아간다.

 

 

 

오늘의 정치현실, 이 정권에도 그대로 전수(傳受)되는 것 같다. 그 현실이 착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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