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광부로서의 삶을 반추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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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광부로서의 삶을 반추하면서 ....

<기고>개인의 탐욕과 욕망 아닌, 공익 위한 이기적 욕심은 버리지 말아야석종현 단국대 명예교수 | 2013.05.08 10:12:51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싸이월드공감 프린트하기 데일리안을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기

 

◇ 석종현 한국토지공법학회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남들은 나에 대하여 일컫기를 학문을 하는 사람쯤으로만 갈래짓는다.

 

그렇지만 근자에 이르러 이런저런 핑계와 구실을 앞세워 본연의 학자로서 일탈하여 정치적인 활동을 했고, 국가발전에 일조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대퉁령만들기에 주력한 적이 있었다.

 

어쭙잖게 머지 않아 터 잡고 안주했던 자리에서 내려 서서 맞이할 퇴로의 끝에서 지금의 정황을 변명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천성이 정치와는 이격되는 터라 우매한 처지에서 번민했던 적도 있었다.

 

예로부터 선각자들은 "학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퇴보한다"고 하여, `학문여역수행주 불진즉퇴(學問如逆水行舟 不進卽退)`라고 엄중히 경고 했음에도 우이독경(牛耳讀經)인 격이 되었으니 유구무언이 도리이지 싶다.

 

거기다가 주자십회(周子十悔)에서 이르고 있는 "봄에 밭을 갈아서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곡식이 없어서 후회한다"고 독려하던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라는 말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입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변변하게 도전을 해보려고 정성을 쏟거나 실천하려는 의지와 신실(信實)함은 여전해서 나의 지난 삶을 반추하면서, 그것으로부터의 역경을 후대들이 근본으로 삼아 주었으면 하는 간절함도 어쩌면 사도로서의 신념이 나의 흉중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최근 초년의 심정으로 돌아가 풋풋하고 꿈 많던 시절 욕심과 오기를 전제로 도전에 몰두하던 나와 조우(遭遇)를 꾀한다. 풋풋하다고 표현은 하지만, 사실 아비규환의 막장 탄광에서 광부로서의 피눈물 나는 역경이 있었을 뿐이고, 이 가운데서도 학구열은 버리고 싶지 않은 터여서, 그곳 막장의 채굴장에서 얻어진 돈을 나의 가족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데 쓰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첫 출발의 막장 탄광에서의 광부생활이 생기를 잃고 풀 죽은 일상으로 전락하거나 시들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맞이했던 첫 강의의 환희가 나의 지난 고생을 말끔하게 정리하게 되는 망각으로 치부했다.

 

막장의 인생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그 순간의 시간 흐름과 함께 학자라는 직업을 단순 평범한 생활수단의 방편으로 치부하기가 싫었다.

 

이같은 나의 생각은 학문을 하더라도 후학들에게 보고가 되고, 그 학문에서의 잉여가치가 국가발전에 모태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아래 행정법과 토지공법학을 선택했다.

 

물론 이같은 나의 결심의 혜안으로 헤아릴 총기를 잃고 초라한 직업인으로 굳혀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지난 나의 족적을 반추해 보면 참으로 많은 성과와 학문적인 업적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매우 보람을 느끼고 있는 현실의 정점에서 회고하건대 개인 석종현의 청년 당시 광부로서의 삶이, 이 국가 경제발전에 어떤 촉매역할을 했고,오늘날 그것들이 국가미래의 어떻게 반면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의 최대치를 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을 위한 일에,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내가 학문으로 터득한 토지공법핚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실물정책 실현에 주춧돌을 놓거나 석가래로 쓰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

 

물론 그 고난의 과정에서 탁월한 재능을 소유하지도 못하고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이는 성실함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주제에 남들같이 화려한 성과를 거두어 선망의 대상이 되고픈 지나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猛省)이 필요하지 싶다.

 

그런 과욕이 내게 가져다준 결과는 물신주의(物神主義)에 함몰되어 진솔한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고 성찰이나 자성의 지혜로움에 이르지 못해 여유없는 팍팍한 삶을 누리게 하는 원초적 독(毒)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돌아가거나 돌이키기 어려운 시점에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나의 피눈물나는 독일광부로서의 역정과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짚어 본다.

 

세상 모든 일의 근원이 내 안에서 연유됨을 깨우치거나 터득하지 못하고 언제나 "네 탓이요"라는 손쉬운 책임 회피성 구실만을 찾아 입에 달고 살아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내(川)의 하류에 흐르는 물의 맑고 흐림은 상수원(上水源)이나 상류의 혼탁(混濁)과 직결되듯이 내가 겪은 모든 문제의 뿌리가 내 자신의 내면에 연유한다는 지혜로움에 이르지 못했던 경우가 허다했다.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슬기로움을 깨우쳐야 아름다운 삶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이같은 평범한 행복을 누리려면 기존의 관념이나 잣대의 도(度)를 벗어난 문화도 기꺼이 껴 안는 아량은 필수적 충족조건이다.

 

그리고 궤도를 이탈하여 이기(利己)와 이타(利他)의 경계를 들쭉날쭉 위태롭게 넘나들며 정도(正道)를 망각하는 풍조까지도 너끈하게 헤아려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아울러 나의 반대편에서 서서 견뎌내기 어려운 시비를 일방적으로 표명하는 경우까지 다소곳이 품어 낼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지 싶다.

 

세상에 대하여 좀더 관대하며 폭이 넓고 깊게 애정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구불구불하고 어렵다는 생(生)의 행로(行路)라도 낭창낭창한 지름길을 찾아냄으로써 참된 진리에 다가갈 방도가 있지 않을까.

 

그 같은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인생의 황혼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내 개인 석종현만의 탐욕이 아니라 개인의 삶조차도 이제 공익발전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전하면서 이 땅의 청년들에게 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절대 헛되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그 헛된 것을 뒤로 물린 자리에 고난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육체적 고달픔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이를 기꺼히 응대하고 어려운 새상을 이겨 나가라고 조언하고 싶다.

 

글/석종현 단국대 명예교수·(사)한국토지공법학회 회장 프린트하기 데일리안을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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