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습니다.

페이지 정보

1,600   2016.04.20 20:25

본문

 

비가 내렸습니다.

기다렸다가 내린 비였습니다.

하늘의 맑음을 훼방하고 싶지 않았던가 봅니다.

비가 내리려면 흐려야 하는 것이니,

피어난 꽃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가 봅니다.

비가 내리면 꽃잎이 지고 말 것이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비를 맞고서도 아직은 꿋꿋하게 버티었습니다.

하얀 치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풍경의 한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다 떨구기에는,

지난 겨울의 차가움을 견딘 노고가 너무 허무한가 봅니다.

 주룩주룩 소리까지 내고서 내린 비였습니다.

메마른 땅을 촉축히 적셔 주려고,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마름을 적시고서 싹을 돋게 할 것입니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곧게 선 나무들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흔들리면서,

몸체 전체에 골고루 비를 맞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겨울의 묵은 때를 다 씻어내는가 봅니다.

씻었으니 맑음으로 봄을 맞이할 수가 있는 것인가 봅니다.

 그리하여

눈 마주쳐도 부끄럽지 않도록,

눈도 나무도 이미 맑음에 기대어 있는 것입니다.

 비가 내려 적셨으니

적셔 있는 것이 다 마르기 전에 싹이 돋아날 것입니다.

한 방울의 물기만으로도 피어낼 수 있는 푸름이니,

풍성한 양의 비를 뿜었으니,

이제 곧 푸름이 지상위로 돋아나 뽐낼 것입니다.

 비를 맞은 꽃잎이 떨어질 것입니다.

꽃잎이 지는 것을 아쉬워 할 일은 아닙니다.

꽃잎을 떨구었으니 잎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겨울 차가움이 올 때까지는 잎의 보호를 받게 되는 나뭇가지입니다.

잎이 있기에 폼도 내고,

잎이 있기에 천지를 더 많이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고 말면 어떠랴,

세상에 지지 않는 생명이 어디에 있을 것이며,

떠나고 말면 어떠랴,

세상에 영원히 머무는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며,

마감이면 어떠랴,

세상에 시작이 있으면 퇴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천천히 오는 시간이면 어떠랴.

그렇게 다가왔으니 더 오래 머물 것이고,

서둘러 오는 시간이면 어떠랴.

그렇게 급히 왔으니 그 다음의 순서를 더 빨리 이끄는 것이니,

시간이 그러하니,

시간들은 나안의 것으로 만들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정극원드림

댓글목록

천봉님의 댓글

이 글은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정극원 교수(한국헌법학회 회장)가 보내준 글이다. 관심있는 분들과 공유하기 위해 여기에 게시합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