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음

페이지 정보

본문

 

묵음




썩은 곳을 도려낸다
어금니에 씌운 왕관에는
묵음의 서식지가 있지
과거를 삼킨 소리는 짐짓 비음이다
파열의 음이 가려워 긁는 날이면
오래 묵힌 시간의 연고를 발라야 해
복개된 하천에게
별똥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물을 수 없고
엄연히 철자가 된 묵음의 유래는
역사책에서 찾을 수 없다
개미의 긴 행렬이 지나가는 행간에
풍문으로 떠돌 뿐,
싸이의 노래에 p 사운드 없고
당신은 철자가 아닌 문장에 새끼손가락을 건다
어둠 앞에 선 눅진한 말이
말줄임표로 얼버무려도
소리 없이 타는
촛농은 알아듣는다

- 정재분, 시 '묵음'


철자 그대로 발음되지 않는,
다른 것에게 소리를 넘겨주는 묵음.
묵음은, 얼핏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양보 같기도 하고
내야 할 소리를 얼버무리는 우유부단 같기도 합니다.
내게 보여준 당신의 행동은,
보여야 할 양심을 뒤로 감춘 그런 묵음은 아닐 테지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