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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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공기는 그 사이에 에너지를 밀집하여 지상 가까이로 내려 앉았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은행나무입니다.

 

계절의 소통을 만듭니다.

잎새 다 떨군 노란 은행나무가 그렇게 만듭니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운치있는 아치를 만들었습니다.

그 아래의 맑은 공기를 감지합니다.

공기들의 고요가 인기척의 소란을 제압하고 있어 좋습니다.

이른 아침을 연 사람들이 저 마다의 목적을 가지고서 그 아래를 지나갑니다.

그러나 공기의 응집까지 깨트리지는 못합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은행나무입니다.

가까이에서 느끼는 것과 멀리에서 보는 것이 다를 테이지만,

계절의 소란으로부터 소외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객의 시야에는 모든 것이 정물화처럼 정지되어 있습니다.

아침의 시간에는 정지가 활동을 대신하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활동이 다시 정지를 대신하기까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소요될 듯합니다.

성능 좋은 카메라로 포착한 풍경처럼 노란 은행잎 끝자락의 채색은 고혹스럽습니다.

빛바래가고 있는 그 원색의 화사함입니다.


섞여서 감칠맛이 나는 것이 있다면

순일무잡으로 더 감미로운 것도 있습니다.

지난하고 고난한 생을 마감하는 단풍이 그렇게 순일무잡의 징표입니다.

노란 물결을 수채화처럼 그리고 있는 단풍은 자신의 그 큰 배경을 위세하지도,

몸체를 흩날려서 으씨되지도 않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홀로 버티다가 시간이 차면 보란 듯이 지상으로 낙하합니다.

 

체념이 아니고 순응입니다. 

소리도 소문도 없이 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여행의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차가워질 대지를 온화하게 하려는 소명에 즐거운 듯합니다.

양탄자처럼 땅을 데필 것입니다.

그 낙엽을 자양분삼아 키워내는 새싹에 벌써 희망을 부둥켜 안게 됩니다.


나무들의 사계절은 다 어른스럽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봄부터 활발하게 꽃피우고

무엇을 그리 다투는지 여름부터 다투듯이 열매를 맺고

무엇을 그리 성글게 하려는지 가을부터 성한 결실을 나누고

무엇이 그리 빠른지 겨울부터 봄의 희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겨울을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봄의 희망을 활발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그러니 잎새를 지상으로 다 돌려 보내는 것이 쉬운 것이 됩니다.


하늘의 색깔은 속이 꽉 찬 통나무처럼 둔탁합니다.

하얀 구름이 푸른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잎을 다 떨구서도 볼멘소리를 하나 하지 않는 은행나무입니다.

풍경의 정물은 그 덧칠을 벗고 미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운동성은 항상 소리에서 출발하는가 봅니다.

자동차 소리가 시간과 공간을 함께  깨우고 있습니다.

소리를 틈타 은행나무가 가벼운 흔들림을 만들고 있습니다.

덩달아 아침이 그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호수에서 막 피어오른 물안개입니다.

그 하얀 속내로 아침물상을 어둡게 덮고 있습니다.

성급한 나무들은 잎사귀들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고서,

자신의 벗은 모습을 다 내보이고서 진솔하게 서 있습니다.

먼 산들도 안개를 이불삼아 깊은 숙면에서 기상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오래 외면하여 더 장엄한 자태를 내보이려는 듯 산들이 지혜롭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말하지 않고 사는 것이

말을 많이 하면서 사는 것보다 행복한 것이 됩니다.

썰물에 휩쓸려서야 비로소 떠내려가는 바다의 부유물처럼 휩쓸리면서 살아가야만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왜 그리도 양지에 휩쓸리고 싶어 하는지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인파 속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시리 소외를 느끼게 되는가 봅니다.

허한 인간의 타고난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단풍이 흐드러지게 뽐내고 있기에 인간들은 가을에 더 외로움을 타는 것인가 봅니다.

자신의 공허조차도 일단은 죄없는 단풍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정작에 세월이 흘러 사그라지는 삶은 깨닫지 못하면서도

가을이 깊어가는 것은 유독 잘 깨닫는 것이 또한 인간인가 봅니다.

가을은 인간을 소외시키고서 혼자 저 만치 깊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차분함이 소란함보다는 더 유의미한 것은 분명한 것인가 봅니다.


문득 은행나무에서 전설을 떠올려 봅니다.

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태고적 사랑의 단초들을 상상하여 봅니다.

주제하지 못하는 열정이 있었고

아무리 막아도 범람하고야 마는 젊음이 있었고

생경한 길을 향하는 도전이 있었다면

전설은 이미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에 세월을 더하고,

그것에 윤색을 더하여 미화되고 불멸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종결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 누군가라도 오래도록 함께라면

그것은 아름다운 동행이 되는 것입니다.

 

정극원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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