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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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농사

 


어릴 적 나는 심각한 집중력장애를 겪었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가능성이 없다’고 하셨지만
초등학교 교감이셨던 아버지는 늘 아들에게
‘넌 대기만성형’이라고 하셨습니다.

대학에 두 차례 연거푸 떨어졌습니다.
처량한 삼수생이 되어 하릴없이 동네 길을 걷다가
다리 밑에 높게 쌓인 쓰레기 더미를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며 그것에
나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습니다.

순간 뱃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받았습니다.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내 안의 호통이었습니다.

즉시 집에서 지게와 삽을 챙겨 들고
다리 밑 쓰레기를 치워 가까운 산자락에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메웠습니다.
몇날 며칠 무겁게 지게를 지고 오가니
어깨는 굵은 피멍이 들었습니다.

쓰레기로 구덩이를 다 메우고 흙을 덮은 자리에
호박씨를 뿌렸습니다.
그해 여름 주렁주렁 열린 호박을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쓰레기가 쓰레기로 끝나지 않고 거름으로 쓰인 것처럼,
모든 것에 ‘가치’가 깃들어 있다는 깨달음은
내게 큰 위안이자 힘이 되었습니다.

가치는 정해져 있거나 누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창조하는 것임을
몸으로 터득한 귀중한 체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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