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페이지 정보

본문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농부들이 귀가하고 난,

시골길을 걸으면서 풍경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참 좋겠습니다.

 

올라 가는 것만 바라느라

내려 가는 것

내려 놓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그리하여

내리는 것을 은연 중에 외면하는,

삶은 그렇게 익숙하여져 있는가 봅니다.

 

추석이면

옆으로 가지를 펼친 소나무에

새끼줄을 엮어서 그네를 만들고서,

순서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늦은 시간에 맘껏 탑니다.

시골의 순서는 모든 것이 연장자순이이

아이들에게는 맨 나중이고 짧은 그네타기입니다.

 

반동에 의하여

그네가 소나무에 닿을 듯 높이 오릅니다.

높이 올라 있는 그 순간은 짧고

내려 오는 순간의 시간이 훨씬 더 긴 것입니다.

 

그 내려옴이 있어

올라가는 발판이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간의 총량은 올라 있음이 아니고 내려 있음입니다.

 

삶이란

결국에는 내려 오는 과정인 것은

그 마지막에는 내려 놓는 것임을,

 

저녁 어스름이 내린다는 것은

태양이 다시 떠오르기 위하여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 시간이니 마음이 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천지의 기운을 다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테양이 어둠을 만들어 에너지를 보충하기 전에,

저녁 어스름에 걷는 자가 먼저 챙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추수 때면

하루의 길이가 왜 그리 짧던지,

벼베기의 절대 시간이 부족한데,

들판으로 나간 엄마가 돌아 오지 않으니,

호롱불 켜 놓고서

배를 졸졸 골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가을 차가움이 왓으니

그야말로 춥고배고픈 아이들입니다.

 

낮이 길었다면,

밖에 나가 놀 시간이라도 길테고,

추수도 그 만큼이나 더 빨라질 것인데,

 

아마도

들판의 외로움을 아는 태양인가 봅니다.

추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시켜서,

텅비어 지는 시간을 늦게 오게 하여서,

들판이 그 시간 만큼이라도 덜 외롭게 하려고 그런 것인가 봅니다.

 

저녁 어스름에

순식간 어둠에 잠기는 풍경을 바라다 보는 것은 좋습니다.

마치 내일을 위한 작별처럼

덜 외로워라고 조금이라도 더 감성적으로 쳐다 봐 주면,

말없는 풍경이 고마워 할 일입니다.

 

정극원드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