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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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위기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어떤 질병이든 초기에는 진단하기 어렵고 그 원인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치료하기는 쉽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은 질병이 말기적 증상에 이르면 쉽게 눈에 띄지만 치료하기는 매우 어렵게 된다.

한국 보수주의는 누가 봐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합리적 보수니 따뜻한 보수니, 별놈의 보수를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는 혹자들의 보수에 대한 폄훼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의 보수주의는 사방으로부터 난타당하고 치욕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차떼기 보수로 상징되는 정경유착과 기득권 집착의 보수라는 이미지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기초한 서구의 보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는 너무 깊고 심각해서 미래의 활로를 모색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위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박근혜대통령 탄핵, 그리고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수구 기득권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보수 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지난 5.9 대선에서 참혹하게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탄핵정국의 광풍 속에서 613 지방선거에서도 야당으로서의 지위마져 잃어버렸다.

 

자유한국당의 5.9 대선 패배 및 6.13 지방선거 참패는 보수 전체의 패배가 아니라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애착심이 애증으로 변했고, 홍준표 전 대표의 문제라는 주장은, 정치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설득력을 더해 준다.

 

이런 상황 하에서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진보세력은 ‘20년 장기집권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면서 기염을 토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은 더욱 더 왜소해 보인다.

보수가 정체(停滯)라는 국민들의 주장과 달리 보수주의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도 부인하진 않는다.

다만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보수에게도 특정 시점에서 변화를 위한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고 변화의 내용이다.

해방 이후 한국정치사에서 보수는 여타의 모든 국내세력을 압도하는 정치세력이었고 그만큼 자신을 이념적으로 정당화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보수가 권력을 갖고 있을 때에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공권력을 동원하여 대내외적으로 인권탄압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반대세력을 탄압하여 자신을 유지함으로써 한국 보수주의의 철학이나 정치이념을 정립해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신과 제5공화국 시대가 끝난 후 한국의 보수는 1987년 역사적으로 가장 중차대한 선택의 시점에 섰다. 6.10항쟁과 6.29 선언이라는 대 타협을 통하여 민주화가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의 정치 지형은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구도로 급속하게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민주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보수대연합이라는 명분 하에 이루어진 19903당 합당은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정치적 결정은 동기 여하를 불문하고 그 결과에 의해 엄정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당시 ‘19903당 합당체제는 여소야대의 국면을 타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정치적 역할을 다한 유신과 5공 세력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김대중의 평민당을 배제시켜 호남 대 비호남이라는 지역 구도를 노골적으로 만들어내고 말았다.

3당 합당은 김영삼세력의 집권에는 기여했지만 노골적 지역주의가 재 발흥하여 한국 정치발전을 가로막았다.

또한 ‘19903당 합당체제는 영호남 지역주의에 덧붙여 충청도 지역주의가 한국정치에 본격적으로 등장함으로써 충청지역이 향후 정치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고, 그러한 지역기반의 선거문화가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었지만, 지난 5.9 대통령선거와 6.13 지방선거에선 이같은 지역주의가 전횡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 것일까 ? 처절하게 망해 가면서도, “우리가 남이가!” 라는 영남기반을 향한 구호에 집착했고, 모든 정치적 현안에 대해 여당에게 질질 끌려 다니면서 보수이념이 아니라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한국정치가 노골적 지역주의의 볼모가 되고 보수의 정치적 패배를 가져온 것은 결국 민주화 이후 시점에서 보수세력이 보수 이념의 정립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보다는 임시방편의 정치적 야합을 했거나 또는 분열을 초래한 데도 그 원인이 있지만, 중요한 건 보수정치의 위기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고 경쟁하면서 국민에게 이념적, 정책적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와 산업화가 상당 부분 이루어졌기 때문에 보수 혹은 진보 어느 한 측이 사회적 담론과 정책 결정을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작금의 한국정치에서의 진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거부한다는 것이 문제다.

국민들도 공감하겠지만, 보수정권이 들어서 경제적 파이를 키워 놓으면, 진보정권은 이를 모두 탕진하는 정책에 주력했다.

바로 이같은 일련의 이유들이 보수정치가 재건되지 않으면 안되는 당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정치는 인물 중심의 정치 및 지역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보수주의 이념 정립을 통하여 보수의 위기 극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권력을 잃어버린 이 시점이 한국의 보수에게는 오히려 부담없이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고 미래지향적 보수 이념을 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념 정립을 위한 보수의 노력은 친.종북세력 측을 자극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최초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생산적인 이념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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