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이동수교수 정년기념논문집 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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賀 書

桂山 李東秀 교수의 정년을 맞이하여 한국토지공법학회가 기관지 토지공법연79집을 정년기념호로 출간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

이교수는 한국토지공법학회의 창립회원이시며, 집행부 상임이사(2002.7.1.2014.6.30.), 홍보이사(2004.7.1.2006.6.30.), 부회장(2006.7.1.2014.6.30.), 기관지 토지공법연구편집위원회 위원장(2010.7.1.2016.6.30.)으로서 그리고 고문(2016.7.1.현재까지)으로서 토지공법학회의 학술활동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봉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옥고를 학회지에 발표하여 토지공법학의 발전에 견인차적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회원 중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모든 분들에게 정년기념호를 만들어 봉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 기념호를 발간하는 것은 계산 선생님의 토지공법학 분야에서의 학문적 업적과 학회 발전에 기여한 봉사와 업적을 높게 평가한 결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산 선생님은 1952814() 부 이승원(작고)과 모 김채식(작고)31의 차남으로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부친은 19546. 25 전쟁 직후 대구시 말단 임시직으로 공직에 진출하셔서 30년 이상을 시 본청, 구청 그리고 동사무소 등지를 옮겨 다시면서 지방행정의 말단 공직을 수행하시다 1976년 말 당시 4급 갑(주사, 6)을 끝으로 퇴직하셨습니다.

계산 선생님은 학창시절을 포함한 젊은 시절에 가난하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럼에도 부친의 한결 같은 자식들에 대한 지극한 교육열로 인해 법학자로서 성할 수 있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산 선생님의 선친께서는 평소 계산께서 교직으로 나아가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비교적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해 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계산 이동수 교수는 법과대학에 진학하여 법조인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늘 지니고 서울지역의 대학으로 진학할 계획이었으나, 집안 형편과 부모님의 바라심 등을 함께 고려하여 그 당시 그렇게 쉽지 않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 교육과로 진학하였습니다. 이 당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은 전액 국비로 장학금을 지급하였습니다. 계산 이동수 교수가 진학한 학과의 학생들은 대부분 행정고시나 사법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이에 계산께서도 학과에서 개설된 법학 교과목 이외의 것은 법학과에서 개설된 과목을 수강하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계산 선생님은 사법시험을 준비한 후 재학 중 합격권에 가까운 성적으로 낙방하여 매우 아쉬웠으나, 고시에 합격한 선후배 동기들에 대한 경쟁심도 발동하여 어려운 형편이지만 군대를 연기하여 시험 준비를 계속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

대학원에서 계산 선생님은 학문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많은 지식과 사람됨을 가르쳐주신 평생의 스승이신 고 김문달 교수님의 문하에 들게 되었습니다.

한국 전쟁 시 영어 통역장교로 근무하셨고 미 정부의 동성무공훈장까지 받으신 스승님께서는 공법영역 특히 행정법에 있어서 절차법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산에게 학부에서 법학이외에도 경제학 공부를 법학전공 학생들 보다 많이 했으, 행정법과 경제학이 접목되는 영역으로서 행정절차법과 규제행정법을 학위논문 및 연구대상으로 하되 미국의 경우를 대상으로 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계산 이동수 교수는 미국 연방행정절차법에 관한 고찰”(1976.2)이란 주제의 석사논문으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고, 이후 행정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행정법학자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계산 선생님은 졸업과 동시에 마침 실시된 육사·3사 교수요원 선발 시험을 거쳐 3사관학교 교수부 법학 전임강사가 되어 3년간 생도들을 교육하면서 만기 전역하였습니다(대위, 1979.6). 계산 선생님은 교수부에 근무하는 동안 행정법을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역 후 바로 박사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계산의 스승님께서는 이제부터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직장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마침 안동 상지 전문대학(현 가톨릭 상지대학교) 행정과에서 행정법 담당 교수를 초빙하는 중이니 서류를 지원하라시며 추천서를 써 주셨습니다. 이후 가톨릭 상지대학 및 국립창원대학교를 거쳐 지금의 당시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 대학)에 자리 잡고 지금까지 봉직하시다가 정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3사관학교 전임강사로 시작하여 무려 406개월의 교직 내지 법학자로서의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학술단체 활동으로는 한국공법학회 부회장(2003), 한국환경법학회 부회장(2005), 한국지방자치법학회 부회장(2007), 한국비교공법학회 부회장(2008), 한국국가법학회 부회장(2013), 한국토지공법학회 부회장(2006)을 역임하셨고, 현재도 한국행정법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회 위원장, 20167월부터는 한국토지공법학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학교보직으로는 1988년 법정대학교 교학부장, 1994년 교무부처장, 1996년 법정연구소 소장, 1997년 법정대학 학장, 2004년 사회과학연구소장, 2008년 고시원장, 2010년 그린 켐퍼스 사업 추친단장, 2010년 학생처장, 2011년 입학처장, 2014년 법정대학, 2014년 대학입학전형 공정관리대책위원회 위원장, 2016년 대외협력단장을 맡아 봉사하셨습니다.

사회활동으로는 1988년 경북일보 비상임 논설위원, 한국법학교수회 이사(1993), 경상북도지방고용심의 위원회 위원(1994), 경상북도 여성정책개발원 자문위원(1998), 경상북도교육소청심사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20002015), 대구광역시 지방소청심사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20012010), 한국법학교수회 부회장(20062014), 대구광역시 의회 의정자문위원(20062012), 학교법인 영남학원 재심위원회 위원(2007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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