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봉 석종현교수 정년기념논문집 봉정식(2009.2.17. 웨스틴조선호텔 오키드룸(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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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 석종현교수 정년기념논문집 봉정식(2009.2.17. 웨스틴조선호텔 오키드룸(2층) 

 

     석종현 회장 회고사(1)

 

학계 원로 선배님들 앞에서 감히 회고의 말씀을 드리고자 하니 죄송스럽고 가슴이 떨립니다. 보잘것 없는 저의 학자로서의 활동을 하사로써 축하 해 주시고, 또한 오늘 직접 축하의 말씀을 해 주신 토지공법학회 고문이시며 한국학술원 회원이신 김남진 교수님, 한국법학교수회 성낙인 회장, 김해룡 전 한국공법학회 회장께 감사드립니다.

 

하서를 보내 격려해 주신 김철용 한국공법학회 고문님, 최송화 한국공법학회 고문님,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님, 김문현 한국공법학회 회장, 김춘환 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그리고 독일 만하임대학교의 쉔케(Ruediger Wolf Schenke) 교수와 국립슈파이어대학의 찌이코(Jan Ziekow) 교수의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논문집에 옥고를 보내 주신 독일대학의 라우빙커, 센케, 로넬렌피취, 피차스, 찌이코, 만젠, 룩스 등 교수님들과 회원님들의 관심과 애정에도 감사드립니다. 투고신청 논문이 넘쳐 탈락논문을 제외하고도 모두 98편의 논문을 토지공법연구 제1, 2, 3호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회원님들의 과분한 관심과 애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논문집필 대신에 한줄 축하메시지를 보내 격려하고 축하해 주신 85명의 회원님들의 애정에도 감사드립니다. 한줄 축하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우리 학계에서는 처음있는 일인테, 저와의 관계 때문에 논문집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시간이 없어 참여하지 못해 약간의 부담을 느끼는 회원들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간행위원장의 생각은 탁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오늘 봉정식을 위하여 공사다망하심에도 불구하고 귀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빈들과 회원님들에게도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축하의 뜻을 화환에 담아 보내 주신 40여분에게도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선후배 교수님들의 뜨겁고 애정어린 과분한 축하를 받게 되어 한없이 영광스럽고 행복합니다.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학문을 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정년을 맞이하면서 기념논문집을 발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회원님들에게 여러 가지 부담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교수로서의 정년이 학자로서의 정년을 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논문집 발간과 봉정식 행사를 하기로 한 것은 교수로서의 정년이 결코 학자로서의 정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생각을 다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봉정식 장소로 조선호텔을 선택한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토지공법학회는 1994년 바로 조선호텔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고, 2003년 저의 화갑논문봉정식과 2004년 토지공법학회 창립10주년 기념행사도 이 호텔에서 하였기 때문에 정년행사도 이 호텔에서 개최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감히 정년은 더 성숙된 학자로서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의와 학생지도 등 교수생활에 얽매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연구활동과 사회활동을 통해 우리 공법학의 토양에 밑거름이 되는 무엇인가를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문과 현실과의 괴리를 극복하는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학문을 막 시작한 1979년도에 제대로 된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재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수한 학문후속 세대들을 발굴 양성하여 이들과 함께 시대변화에 따른 학문의 발전을 모색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행정법 분야는 너무 방대하여 미개척의 영역이 너무나 많았고, 미개척 분야에 대한 충분한 연구인력의 확보없이는 행정법제도 발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눈먼 돈들마저 법학교수는 용케도 피해 가는 모양입니다.

 

제가 2001년 공법학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행정법 전공 법학교수들을 파악해 보니 12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많아야 200여명 정도가 될 정도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인력만으로는 전문화되는 행정법제도를 주도하는 연구활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행정법교수들은 강단법학 및 총론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니, 행정법 각론 내지 전문행정법 영역의 전문가인 행정법학도의 양성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2001년 공법학회 회장 취임사에서 사회과학분야에 많은 연구기관들, 예컨대 한국행정연구원, 지방행정연구원, 의정연구원, 국토연구원. 교통개발연구원, 서울시정정개발연구원 들이 있지만, 그 연구인력중에 행정법학도를 찾아 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이는 국가의 연구기관설립 정책이 규범적 접근보다는 사실적 연구에 비중을 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합헌적 입법정책적 연구나 검토는 사실상 불가능해 지고, 행정이 법위에 군림하는 행치주의 만능을 초래하는 결과적 현실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법제도에 관한 연구를 우선적으로 산하기관에 수탁처리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도문제에 대한 법적 연구를 차단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 길이 보이지 않아 걱정입니다.

행정법학도의 양성이 이 나라 바른 법치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국가의 경제규모나 법제도 발전경향에 비추어 보면 2만명 이상의 전문 행정법연구가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행정법연구가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비법학도들이 장악하고 있는 법치현장에서 바른 법치가 행해진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행정법학자들은 법치주의 내지 법치행정의 구현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침행정의 만능에 따라 형성된 장벽 앞에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우리의 법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침행정에 의거 내용적으로 형해화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조금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공법학도들에게는 위기임이 분명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도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어 더더욱 문제입니다.

제 자신도 몇 년전에 중앙행정기관으로 부터 법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법학교수들이 용역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법학도마저 해당 특정 전문분야에 법학도를 연구원으로 채용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경험하였습니다.

    제가 경험한 사실들은 사회가 법학도들을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이지만, 이와 같은 인식이 너무 깊고 넓게 확산되어 있어 문제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과 현실과의 괴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창이나 실무법학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것은 모두 앞에서 지적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결과인 것입니다.

 

1994년 토지공법학회를 창립하게 된 것도 행정법학의 일 영역에서만이라도 먼저 실무법학을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회는 짧은 세월동안 65회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한독국제학술대회를 서울과 독일에서 번갈아 개최하는 기틀도 마련하였습니다. 우리 학회의 학술지 토지공법연구는 공법학 분야에서는 최초로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등재지로 인정을 받았으며, 또한 오늘로써 제43권의 학술지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주지하듯이 저는 독일국립슈파이어대학과 튀빙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기 때문에 독일은 학문적으로 저의 스승의 나라입니다. 이는 독일에서 공부한 후학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독학술교류에 있어 사제의 관계가 유지되어 왔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제관계에 있어 제자는 그 스승과 학문적 대등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한독의 사제관계를 탈피하고 상호간 대등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를 저는 이미 1995년에 피차스 교수와 함께 만들어 냈습니다. 학술대회의 주제를 한국과 독일에 있어서 헌법과 행정법의 발전’(Entwicklungen des Staats-und Verwaltungsrechts in Suedkorea und Deutschland)으로 하고, 독일, 한국, 중국, 그리스, 인도 등의 5개국 학자들이 발제하고 토론하였습니다. 한국학자로는 김남진, 김효전, 박수현, 석종현 등 네명이 참가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네분은 모두 한국공법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는 박수혁, 김해룡, 류지태, 김현준, 석종현 등 다섯 명이 독일 튀빙엔대학교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비스바덴으로 자리를 옴겨 그곳 훼센주 정보보호청에서 정보보호 세미나(Deutsch-Loreanische Datenschutz-Konferenz)에서 참여학자들이 각각 주제발표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2005년에는 만하임대학교에서 저와 쉔케교수가 '한국과 독일에서 국가적 고권행위에 대한 권리구제'(Rechtsschutz gegen staatliche Hoheitsakte in Deutschland und Korea)라는 주제의 한독학술대회를 공동개최하였습니다. 한국학자로는 김해룡, 조홍석, 류지태, 김춘환, 송동수, 강현호, 김희곤, 석종현 등 8명의 학자가 각각 독일어로 주제발표와 토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만하임대학측의 완벽한 행사준비와 극진한 예우와 대접은 감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의 나라에서 독일교수들로부터 학문적으로 대등한 파트너로서 대접을 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에 저는 독일 슈파이어대학의 Prof.Dr. Jan Ziekow 교수의 초청을 받아 제7차 슈파이어 계획법심포지움에서 한국의 도로계획의 현안문제(Aktuelle Probleme der Verkehrswegelpaung in Korea)라는 주제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발표논문은 Schriftenreihe der Hochschule Speyer, Band 179, 221-236면에 게재되었습니다.

 

2006년에 저는 행정법 학술지로는 가장 권위있는 Verwalrungsarchiv‘Die Enteignung zu Gunsten des privaten Unternehmers in Korea"(한국에서 사기업을 위한 공용수용)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습니다(VerwArch. 97 Jahrgang, S.611-625.

회고사는 (2)에서 다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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