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조사는 왜 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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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3   2016.03.1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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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조사는 왜 부당한가?

 

 

石 琮 顯 (단국대 교수)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

 

 

1. 내부거래조사는 ‘공정위의 보검(寶劍)'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6개그룹(삼성, LG, SK, 현대자동차, 현대, 현대중공업) 80개 계열사간의 내부거래와 관련된 서면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결합재무제표 발표 결과 기업집단의 내부거래가 줄어들지 않아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지만, 재계는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다시 내부거래조사의 칼을 빼든 배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이번조사가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올해 초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기업에 부담을 주는 내부거래조사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재벌정책이 다시 공세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특히 공정위의 주장과 달리 결합재무제표상의 내부거래 비중이 소폭이나마 감소했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4대 기업집단(삼성, LG, SK, 현대車)계열사간의 내부거래가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0년 39.5%에서 '01년 37.6%로 감소했고, 결합재무제표작성 대상 12대 기업집단의 내부거래 비중도 '00년 35.3%에서 '01년 32.5%로 줄어들었다. 적어도 숫자만놓고 보면 공정위가 내 건 내부거래조사의 명분은 매우 궁색한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 내부거래조사는 공정위의 주력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공정위는 1998년부터 무려 9차례에 걸쳐 대기업의 내부거래를 조사하여 총29조 2천억원의 지원성거래를 적발하고 신문포고명령 등 시정명령과 함께 총 2,95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공정위가 관장하는 여타의 경제력집중 억제 관련 규제(출자총액규제, 채무보증금지 등)들은 사전에 기준이 제시되기 때문에 그나마 기업들이 규제위반 여부를 예측할 수 있고 경영활동에 참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당내부거래조사는 전혀 다르다. 공정위의 판단에 따라 수시로 임의조사가 가능하고 그 기준도 구체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들은 마치 ‘개발경제시대의 세무조사와 같다’며 공정위의 내부거래조사를 불신하고 있다. 내부거래조사 수감과정에 관여했던 한 기업관계자는 “조사과정에서도 고발 운운하며 반협박적이고 감정에 치우쳐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일단 과징금을 부과하고 억울하면 소송하라는 식의 업무처리를 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을 무조건 범죄집단 다루듯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의 조사시점이나 정황을 살펴보면 내부거래조사가 경쟁질서의 구축 보다는 재벌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평가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빅딜이 논의될 때도, 외자유치를 위한 자산매각을 종용할 때도 공정위의 내부거래조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정부가 재벌개혁을 강조하면 공정위는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내부거래조사로 화답했던 것이다.

 

과연 공정위의 주장대로 국내 대기업은 아직도 부당내부거래를 일삼으며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내부거래조사에 반대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공정위의 내부거래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제 5년여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내부거래를 둘러싼 정부와 기업간 갈등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가 보도록 하자.

 

2. 내부거래조사의 문제점

 

공정거래법 제23조는 부당내부거래에 대해『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해 가지급금, 대여금, 인력 부동산, 유가증권, 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단서가 붙는다.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되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부당내부거래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결국 계열사간의 자금, 자산, 지원행위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경쟁제한적인 요인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부당내부거래로 분류되어 규제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부당내부거래는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시장에서의 경쟁제한성을 기준으로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행법의 취지이다.

 

1) 투망식 일제조사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격

 

재계는 부당내부거래조사도 법대로만 하자고 주장한다. 현행법에 규정된 대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내부거래에 대해서만 부당성 여부를 조사한다면 기꺼이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내부거래의 부당성 여부에 대한 명백한 혐의 사실이 포착되지 않아도 전체 계열사를 대상으로 투망식의 일제조사가 벌어진다. 혹시 부당내부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르니 서면조사에 응하고 실태조사에 들어가면 협조하라는 식이다. 이는 공정위의 과잉적 조사권행사이며, 헌법상 과잉금지(過剩禁止)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의 소지가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계열사간의 내부거래가 모두 부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위는 실제 경쟁제한성의 입증 여부를 별로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일단 내부거래는『무조건 반경쟁적이거나 비효율적』이라고 보고 조사에 착수한다. 과연 그런가?

 

약간의 경제학적 상식만 전제하더라도 계열사간의 자금이나 자산 지원이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정위는 계열사가 자금을 지원해 부실기업을 회생시키는 행위를 부당한 내부거래의 전형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장경쟁이나 가격경쟁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사이면서 재무구조가 부실한 A라는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A기업이 계열사의 지원을 받아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영업을 계속한다면 도태되었을 경우 보다 경쟁사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 되므로 결국 경쟁은 촉진된다. A기업이 사라지고 나머지 기업들로만 시장이 운영되는 것보다 오히려 경쟁을 유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위와 같은 경우 자금을 지원한 계열사의 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주주들이 손해를 본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정부가 1998년 구조조정 차원에서 암묵적으로 인수를 종용했던 후순위채권을 계열사가 인수한 경우를 살펴 보자. 당시 상황을 보면 후순위채권은 그 성격상 계열사나 특수관계인이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계열사가 회생한 경우, 후순위채권을 인수한 기업들은 높은 이자수익을 얻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계열사를 지원했던 기업의 주주들은 오히려 이익을 보았다. 지원의 대가로 주식을 받는 경우에도 기업이 회생한다면 지원을 담당한 계열사는 투자수익을 얻게 된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에 저리의 자금을 지원하다 도산하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러한 내부거래의 경제적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계열사 지원 행위의 대부분을 부당내부거래에 포함시켰다. 기업들은 동일한 후순위채권이라 하더라도 부실화의 정도가 심해 거래가 되지 않는 경우의 명백한 지원성 거래와 위험도가 낮고 수익성이 있는 경우를 구분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에 규정된 경쟁제한성도 경제적 효과도 모두 무시되었던 것이다.

 

한 기업관계자는『기업을 하다보면 재무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퇴출하면 부실기업주로 욕먹고 출자기업이나 계열사가 지원을 통해 윈윈 전략을 추구하면 부당내부거래로 몰리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며 이렇게 가다보면 『부실기업이 발생할 경우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워크아웃 등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다른 해결방안을 놓아 두고 부실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처리방안을 정부가 암묵적으로 조장하는 꼴』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량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계열사의 지원을 통해 A기업이 가격을 내리거나 영업조건을 개선한다면 가격인하경쟁이나 서비스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정거래법의 제정 취지인 경쟁 촉진에 비추어 하등에 문제될 것이 없다. 일부에서는 계열사간의 지원이 이루어지면 계열구조를 갖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손해가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 역시 현실과 다르다. 예를 들어 계열하청기업에는 부품가격을 1만원으로 납품을 받고 비계열하청기업으로부터는 9천원으로 납품받고 있을 때 1천원의 단가 차이가 과연 불공정한 가격차별이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계열기업의 경우 갑작스럽게 거래를 거절하거나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가격 프리미움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나 전자 업종 처럼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이 중요한 경우에는 안정적인 거래의 보장성만으로도 납품업체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계열사에 대한 높은 가격지불은 비계열하청기업들을 관리하는 비용이나 이들의 기회주의적 행위로 인한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러한 내부거래의 효율성 증진 효과를 부당내부거래 판정에 반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수직통합 등을 통한 계열사간의 내부거래가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경제이론이 주목받기 시작한 1980년대이후부터는 부당지원행위를 직접 규제하지 않고 경쟁제한적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문제삼고 있다. 일본 역시 시장경쟁의 격화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부당내부거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보고 계열거래를 무조건 문제삼는 과거의 정책방향을 전환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2) 내부거래조사를 둘러싼 소송과 위헌 시비

 

이처럼 법과 경제적 효과를 무시하고 강행되는 내부거래조사는 이제 소송과 위헌시비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1998년이후 지난해까지 4개그룹이 부당내부거래의 과징금 부과와 관련하여 제기한 소송만도 18건이며 이 중 10건은 법원에 계류중이다.

 

공정거래법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공정거래법이 추구하고 있는 가장 큰 목적은 공정한 경쟁질서의 유지와 경쟁 촉진이다. 아무리 적벌한 절차를 거쳤더라도 경쟁원칙에 위배된다면 공정거래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과정상의 문제가 있더라도 경쟁질서를 저해하지 않았다면 이는 공정위가 간여할 사항이 아니다. 』라고 지적하면서 『만약 기업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리만 따진다면 내부거래조사와 관련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며 기업들의 승소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잘라 말한다. 계열사에 대한 자금이나 자산 지원이 곧바로 경쟁제한적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이를 부당내부거래로 규정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엄정한 게임의 규칙이 되어야 할 공정거래법이 소송과 위헌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것 자체가 참담한 성적표이지만, 공정위는 오히려 자신들의 법적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만 계속하고 있다. 실제로 공정위는 지난 96년말 부당내부거래 관련 조항을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닌 경제력집중억제 시책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강구한 적이 있다. 내부거래조사를 재량의 여지가 보다 큰 경제력집중 억제 규제로 변경함으로써 경쟁제한성이나 경제적 효과 등의 시비와 관계없이 조사권을 휘두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경쟁법의 국제적 추세에 반한다는 여론에 못이겨 곧 무산되었다.

 

국민의 정부 들어 공정위는 금융거래 계좌추적권을 인정받는 등 매년 조사 권한을 강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현재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은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도 공정위가 자주적으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검찰보다도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또 2001년에는 내부거래조사시 일부 기업이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조사에 불응할 경우의 과태료를 대폭 인상하고(개인은 1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법인은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위반 혐의만 있어도 직권 조사가 가능하도록 법률을 개정하였다. 기업들의 불만을 괘씸죄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을 곧장 실천에 옮긴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내부거래조사를 위해 압수․수색 등의 강제조사권이 필요하다면서 이와 관련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의 일부 직원이 특별사법경찰관의 직무를 담당하도록 한다는 계획인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계좌추적권까지 확보했는데 조사수단이 부족하다는 공정위의 주장을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선진국에서는 규제하지도 않는 부당내부거래 행위와 같은 순수경제사안에 특별사법경찰권까지 적용하자는 공정위의 주장에 실소를 금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단체들이 공정위의 강제조사권이 남용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이며 공정위는 과연 누가 견제할 지 의문이라며 법과 경제현실을 무시하는 공정위의 독주를 우려하고 있는데 일리가 있다.

 

내부거래조사를 둘러싼 견해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2001년 9월, 서울고등법원은 부당내부거래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에 위헌성이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가 SK 그룹 12개 계열사의 SK증권에 대한 부당지원행위에 대해 19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데 따른 소송에서 공정거래법 제24조의 2에 의한 과징금이 벌금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어 이중처벌의 금지원칙 등에 위배될 소지가 있음을 지적했다. 비록 부당내부거래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는 아니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향하는 공정위의 독주에 대한 사법적 경고라 할 것이다.

 

 

3) 조사수감에 따른 경영활동의 부담

 

기업들이 부당내부거래조사를 꺼리는 또다른 이유는 조사수감에 따른 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98년이후 부당내부거래조사가 수시로 이루어지면서 조사대상과 범위가 광범해지고 조사기간이 장기화되었다. 위반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부터 서둘렀기 때문에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었고 한번 조사에 들어간 이상 일정한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에 조사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필연적으로 기업들은 조사 수감에 과도한 대응인력이 소용되는 등 업무수행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했다.

 

전경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그룹 30개업체가 받는 부당내부거래조사에 대한 현장조사는 평균 23.6일(5일에서 53일까지)이 소요되었고 38.1개의 관련 서류가 제출되었으며 20.3명의 대응인력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부서를 위주로 3~8명의 수감인력이 조사기간 내내 발이 묶였고 자료제출과 사실확인 등에 인사, 자금, 회계, 경리 등 주요부서 인력이 모두 동원되었다. 한 기업관계자는『먹고살기도 바쁜데 명백히 입증되지도 않은 사실을 확인해 주어야 하는 부당내부거래조사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반문하면서『선진국의 경우 기업이 법원에 부당한 조사의 취소를 요청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공정위는 내부거래조사의 합리성을 위해『부당내부거래 심사지침』을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말이 심사지침이지 공정위의 수사지침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의 자체 조사결과만을 토대로 특정 거래를 부당한 지원행위로 규정, 심사지침에 예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정위의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경제계 및 법조계에서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며 일부 사안의 경우 행정소송이 걸려 있는 상태이지만 공정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년 부당내부거래 유형을 확장하는데만 힘을 쏟고 있다. 재계는 특정거래를 부당내부거래 심사지침에 예시하는 것은 심각한 경제활동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일한 거래라 하더라도 주어진 상황과 결과에 따라 부당성 여부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단순히 사례를 나열하여 거래를 제약하는 것은 정상적인 거래마저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내부거래조사도 선진화되어야 한다

 

공정위의 투망식의 내부거래조사 관행은 행정편의주의에 터잡은 것으로 법치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라는 긴급사태와 구조조정을 압박하느라 잠시 남용되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국가발전을 위해서 정부와 기업간의 소모적인 갈등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위의 내부거래조사는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현행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국한되어야 한다. 『내부거래는 모두 악』이라는 잘못된 경제인식으로는 복잡한 거래관계를 판정할 수 없다. 문제가 되었던 결합재무제표상의 내부거래에 대해서도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국내 4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원인은 이들의 주력업종이 전자, 자동차 등 수직계열화가 긴요한 기업군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조차 결합재무제표상의 내부거래가 곧 부당내부거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혹시 부당내부거래가 있을지도 모르니 조사를 해보겠다는 식의 접근은 경제검찰이라는 공정위로서는 매우 프로답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히려 선진국의 내부거래조사 관행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한 경쟁법 집행기관들의 판례를 축적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내부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선결과제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고를 무시할 경우 내부거래조사는 언젠가 위헌 시비에 직면하여 공정위의 권위와 위상을 떨어뜨리는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정위가 재벌개혁의 전도사라는 지나친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도 업무 수행에는 장애가 된다. 한 법조계 인사는『재벌이 아무리 미워도 공정위의 설립 목적이 경쟁촉진에 있는 만큼 공정위는 경쟁제한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며 『경쟁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체의 지원행위에 불법의 징후가 있다면 이는 공정거래법이 아닌 상법이나 증권거래법, 세법, 형법 등 다른 법에서 관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계열사 지원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주주대표소송을 통하여 회사가 입은 손해를 보전받을 수 있고 세법은 이전가격의 적절성 여부를 심사하게 되어 있다. 더욱이 경쟁제한성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내부거래의 부당성 문제는 증권거래법이나 상법에서 다루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이러한 추세에 비추어 보면 무작정 조사 권한을 강화하려는 시도에 앞서 공정위의 업무 영역부터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당내부거래 행위에 대한 감시는 이제 시장과 이해관계자들에게 돌려 줄 때가 되었다. 지난 5년간의 개혁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제가 완성되었고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의식 수준도 놀랄 정도로 향상되었다. 더 이상 정부가 직접 규제하지 않아도 시장참가자들끼리 부당한 경영진의 행위를 견제하고 제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공정위가 조사권을 쉽게 발동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오히려 선진국과 같이 조사권의 발동요건을 법령에 구체화하고 이를 통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합헌적(合憲的)법치(法治)를 실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정위는 부당내부거래조사와 같은 낡은 정책말고도 인력과 자원을 집중해야 할 수많은 과제와 직면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시장개방과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경영환경에 맞추어 경쟁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기업결합 등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경쟁규범을 창출해 내야 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당장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세인의 주목 끌기 위한 대기업과의 전쟁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 그 대신에 지금은 눈에 띠지 않지만 경쟁을 억제하는 제반 관행을 시정하고 미래의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조사하고 연구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본연의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 미래의 경제 검찰로 존경받느냐 의미없는 대기업 공격의 소총수로 전락하느냐의 기로에 선 공정위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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