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총리제’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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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   2016.03.1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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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총리제’의 허실

 

 

현안으로서의 ‘책임총리제’

이른바 ‘책임총리제’의 문제가 다시 정가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논의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비록 내년 총선 이후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으나 분권형의 ‘책임총리제’를 공약으로 제시한 일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노대통령의 취임 후 총리임명동의안의 국회처리를 전후해서는 국무총리가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등 헌법상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것을 요청하는 뜻에서 책임총리가 될 것을 요망하는 여론이 조성되었고, 이제 다시 그 공약의 이행 조건이 되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책임총리제의 당장 시행을 요구하는 정파와 이를 반대하는 정파의 이해대립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와 같은 민감한 정치투쟁에 휘말리는 소모적 논의보다는 헌법적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 헌법상의 국무총리제

먼저 우리 헌법에서 국무총리제가 규정된 참뜻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무총리는 제헌 당시부터 규정되어 왔다. 그 후 1954년의 제2차 개헌에서 의원내각제가 채택되었던 1960년의 제3차 개헌 전까지의 폐지되었던 기간과 이후 1961년의 5․16쿠데타까지의 짧은 의원내각제 기간을 제외하고는 국무총리는 우리 헌법상 행정부의 제2인자로의 지위를 유지하여 왔다. 따라서 제헌 이후 지금까지의 국무총리는 대체로 대통령제 하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일방적 독주를 행정부 내부에서나마 견제하고자 의원내각제적 요소로서 가미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의 헌정사에서 국무총리가 이와 같은 기대를 충족시켰던 예는 없었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은 대통령에 대한 견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권한을 총리에게 부여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총리의 견제역할은 애초부터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이 형식적 제2인자의 지위에 명망가를 발탁하여 민심을 모은 다음 불리한 정국이 닥치는 경우 그를 경질함으로써 일종의 상황타개를 위한 ‘소모품’으로 총리직을 이용해 온 것이 현실이었다.

여기에서 국무총리제의 폐지 논의가 등장한다. 대통령의 책임을 모호하게 할 뿐인 무력한 제2인자라는 낙인에다 대통령 유고시의 그 권한대행은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자라는 핸디캡으로 인하여 민주적 정당성에도 문제가 있으므로 차리리 국무총리를 폐지하고 부통령제를 채택하자는 주장이다.

 

책임총리제의 주장

그러나 부통령제는 또 나름대로의 단점이 있고, 국무총리제는 우리 헌정에서 하나의 굳어진 관행이라 본다면 그 폐지만이 능사는 아니다. 폐지는 개헌 문제이기도 하여 결코 간단하지 아니하다. 여기서 국무총리제를 채택한 애초의 취지를 살리는 길로서 생각해 낸 것이 책임총리제이다. 총리가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권한을 부여하면 될 것이고, 그리되면 마치 이원적 집정부제 하에서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는 현행 헌법상 총리의 권한으로 규정되어 있는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화한다는 내용에서부터 이원적 집정부제 하의 총리처럼 거의 모든 행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게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한 내용은 후자인 이원적 집정부제 하의 총리와 유사한 것이라고 하겠는데, 문제는 현행 헌법 하에서 이상과 같은 헌정운영이 과연 가능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차라리 개헌을

대통령이 마음먹고 권한을 부여하기만 하면 이원집정부적인 헌정운영도 가능하다는 주장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 같다. 권력의 속성이 그런 식의 권한분장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가장 간단하다고 생각되는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해임건의권의 실질화조차도 이루지 못하였던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현행 헌법이 국무총리의 그러한 권한을 실질화하기 위해서 전의 헌법들보다 특별한 배려를 한 흔적도 없다. 또 가령 이원집정부식의 권한분장을 행한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책임을 모호하게 하여 대통령제 헌법의 근본취지에 반하는 것이 된다. 책임총리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행 헌법 하에서 이원집정부적 운영 같은 것을 헌법관행으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이른바 헌법변천(변질)의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으나,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관행의 전제가 성립되기 어려운데다가, 이원집정부적 운영발상은 위헌적인 것이다. 이것은 헌법변천의 일반이론에 비추어도 분명히 헌법변천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나치게 큰 권한을 국무총리제를 통하여 견제하기 위해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책임총리제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런 방향의 정도는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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