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토기본법` 전면 재검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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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0   2016.03.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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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시론 제28호]

 

 

법치시론 제28호는 문화일보 2002.4.25.에 게재된 전기성교수(입법학회부회장)의 기고문(포럼)을 전재한 것임을 밝힌다.

 

 

<포럼>`국토기본법` 전면 재검토를

 

정부와 정치권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쓰는 말 중에 ‘법과 원칙에 따라’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법은 국회와 다른 하위 입법기관에서 정한 법령과 조례 등을 의미하며, 원칙은 법에 준하여 정당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만큼 법과 원칙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국회와 정부가 제정한 법이며, 그것도 많은 하위법 제정의 기본이 되는 국토기본법을 잘못 제정했다면 어떻게 될까. 2003년 1월1일부터 시행되며 현재 시행령을 만들고 있는 국토기본법은 국토분야 최상위 법률이다.

이 법은 현행 국토이용관리법과 도시계획법이 준농림지역 등의 난개발 방지에 한계가 있어 강제로 퇴출시키고 대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약칭 국토계획법)과 함께 만든 법이다. 즉, 모든 토지는 선계획-후개발로 ‘계획없이 개발 없음’을 선포하고 시행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95년부터 5년간 도시계획법 개정에 참여한 학자들도 허탈한 심정이지만 참고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면 새 법은 이러한 문제점을 씻어내는 알찬 법일까?

유감스럽게도 기대와는 달리 ‘기본이 훼손된 법’이라고 본다. 국토관리의 기본법이 이 정도면 다른 하위법의 수준이 우려되며 이는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입법과 계획의 개념부터 빗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첫째, 국토계획 체계를 국토종합계획-도종합계획-시·군종합계획의 수직형으로 하면서 특별시, 광역시계획을 도계획의 아래인 시·군종합계획과 같은 수준에 놓아 계획체계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도시계획법이 도시기본계획 수립 대상을 특별시, 광역시, 시·군으로 한 것을 따르려 했는지 모르나 종합계획과는 그 성격이 다르며 실제로 도시기본계획에는 도계획이 없다.

종합계획은 토지공간 문제에 더하여 국민생활의 기본이 되는 국토 기간시설의 확충에 관한 사항이나 주택, 상하수도 등 생활 여건의 조성 및 삶의 질 개선에 관한 사항 등(제10조 4·5·7호) 토지공간과 다른 사항이 포함되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인구와 경제력, 교통문제 등은 전국의 30∼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단지 토지 면적만을 기준으로 하여 시·군과 같은 수준의 하위계획으로 맞추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

둘째, 국토계획이 장기발전을 위한 지침적 계획임에도 특별시, 광역시, 시·군의 종합계획을 국토계획법에 의해 수립되는 ‘도시계획’으로 갈음하는 것은 시행이 될 수 없는 중대한 잘못이다.

‘도시계획’이라함은 장기계획의 지침적 성격인 도시기본계획과 구체적인 시행방법의 예로 축척 5000분의 1지도에 계획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직접 구속하는 ‘관리계획’을 함께 칭하는 것이다. 이 2개의 계획은 그 성격과 역할, 효과가 크게 다른 계획이다.

따라서 구속력 있는 하위 관리계획을 선언적 의미인 상위 종합계획으로 갈음하는 것은 논리상 가능하지 않다. 설령 시행한다 해도 해당 공무원과 국민에게 큰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임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마치 벼에다 쌀을 섞어 쌀밥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벼는 찧으면 쌀이 되지만 쌀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볍씨의 위상도 갖고 있기 때문에 벼와 쌀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법 모순은 국토기본법뿐만 아니라 다른 법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가 되지 않아 그 영향이 국정의 난맥과 계층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실 입법은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고, 그래서 부패한 나라의 법은 부패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 이 문제점은 대학원생들이 수업시간에 발견한 극히 기초적인 것이다. 헌법기관인 국회, 정부에서 묵과하였다면 예삿일이 아니며 학생과 국민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법을 만든 국회와 정부는 이 법의 문제점과 입법과정을 다시 검토하고 이런 수준의 법을 계속 만들 것인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학계, 언론, 시민단체도 적극 검토하고 공론화하여 입법개혁의 계기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글 전기성 한양대 도시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입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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