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治와 農業政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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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4   2016.03.1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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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시론 제22호]

 

 

法治와 農業政策

 

석 종 현(石琮顯)

(사)한국법제발전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한국법제발전연구소가 개최하는 제2회 세미나에 참석해 주신 내외귀빈들께 먼저 연구소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소장의 입장에서 먼저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공법학도들이 중심이 된 본 연구소가 이번에는 '뉴라운드 대비 혁신적 농업정책 방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농업정책이나 농업현실에 대하여 비전문가의 입장이지만, 농업정책 역시 따지고 보면 농업법령상의 행정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행정작용인 것이며, 따라서 공법학도들의 시각에서 관심을 가지고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이 주지하다시피 지난 2001년 11월 14일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WTO각료회의는 뉴라운드 출범을 선언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2004년까지 쌀을 최소량만 수입하는 관세유예 품목으로 지정받았습니다. 농림부의 입장은 2004년이후에도 쌀재협상시 개도국지위를 유지해 쌀관세인하폭을 낮추면서 완전 관세화를 피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쌀에 대한 시장개방 가능성이 크게 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협정문은 2004년 쌀 재협상 때 수입국의 시장개방 수준에 수출국이 만족하지 못하면 수출국이 일방적으로 최소시장접근물량을 늘릴 수 있도록 해 사실상 시장개방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쌀 시장을 완전 개방하게 된다면 경쟁력을 제대로 갖출 수 없는 우리 농업은 헤어날 수 없는 위기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이미 예상된 농업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우루과이라운드출범이후 1992년부터 98년까지 농어촌구조개선자금 42조원, 또 1994년부터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농어촌특별세를 신설해 연간 1조5000억원 안팎을 농업 부문 등에 지원하는 등 지금까지 총 57조원을 투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만큼 투자를 하면 한국 농업이 우루과이라운드의 거센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게 정부의 청사진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지난 10년간 농가부채는 오히려 배로 늘고, 줄이고자 했던 농업소득 중 쌀농사비중은 95년 38%에서 지난해 52%로 늘어났으며, 중요한 경쟁력 지표인 가구당 벼 재배면적은 같은 기간에 0.9㏊에서 1.0㏊로 제자리 걸음을 함으로써 농업의 규모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금만 지원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지 정부는 해마다 정치논리로 추곡수매가·수매량을 정하면서 당장 아픈 농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농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미봉책에 불과한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정부의 농업정책이 근시안적인 미봉책 중심이었고, 그와 같은 정책이 뉴라운드의 페러다임에 맞지 아니하고 문제가 있다면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농정전문가들은 지혜를 뫃아야 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부의 농업정책은 이제 뉴라운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추어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근본적인 관점에서 발상의 전환을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농정의 기본패러다임을 바꾸지 아니하고는 경쟁력을 갖출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 정부의 농업정책의 장단기과제로는 쌀 수매가 인상이냐 인하냐, 농업보조금을 통한 소득보전 실익 있나, 쌀시장 개방 피할 수 있나, 식량자급 문제없나, 농지 묶어둬야 하나, 농촌 구조조정 어떻게 해야 하나, 늘어나는 쌀 재고 대책은 무엇인가 하는 등 산적해 있는 실정입니다. 이와 같은 산적한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과제이자 문제인 것입니다.

농정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공법학도들이 중심이 된 본 연구소가 농업정책에 관심을 가지는 점에 대해서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잠깐 지적한 바와 같이 정부의 농업정책의 집행은 바로 법치행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은 공법학도들이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여야 하는 영역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법치국가에 있어 정부의 농업정책이나 농정은 합헌적 법치의 범주내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헌법상의 농민의 기본권 실현에 관한 문제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농업·농촌기본법이 제2조에서 법의 기본이념을 규정한 것은 우리 농정이 지켜야 할 헌법가치를 구체화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동법은 농정의 기본이념은 "농업은 국민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국토환경보전에 이바지하는 등 경제적·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간산업으로서 국가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의 기반이 되도록 하고, 농업인은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다른 산업종사자와 균형된 소득을 실현하는 경제주체로 성장하여 나가도록 하며, 농촌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는 풍요로운 산업·생활공간으로 발전시켜 이를 미래세대에 계승되도록 함에 있다"고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게 농업의 안정적인 성장 및 발전과 농어촌개발 등을 위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시행할 책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국가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필수적이 요소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하여 적정한 식량자급수준의 목표를 설정·유지하며 적정한 식량재고량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책무를 지고 있으며, 또한 농산물의 생산·유통 등 종합적인 농업구조의 개선을 통하여 농업인의 소득이 증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농촌을 도시와 연계된 생활공간으로 발전시켜 농촌의 쾌적성이 증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함은 물론 농촌지역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보전·계승하고 농촌주민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책무도 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농업의 환경보전기능을 증대시키고 안전한 농산물의 생산 및 소비를 촉진하기 이하여 지속가능한 환경친화적인 농업을 육성하여야 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특히 동법 제34조는 "정부는 우리나라의 권리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농업통산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하며, 정부는 농업분야의 국제협력증진을 위하여 농업정책에 관한 정보 및 농업인력·기술의 교류, 농업관련 국제기구활동에의 참여 등 필요한 노력을 하여야 하며, 정부는 해외의존도가 높은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을 위하여 농업투자환경조사 등 해외농업개발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농업·농촌기본법의 여러 규정들은 정부에게 농업에 관한 국제적 환경의 변화에 경쟁력있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만전에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책무와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다면 정부는 이미 농업에 관한 그 어떠한 국제적 환경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는 농업정책을 마련해 두었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농업은 뉴라운드 출범에 따라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정부의 농업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며, 법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정치적 또는 법적 책임(특히 행정조직내에서의 징계책임)을 물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공법학도인 저의 입장에서는 농업정책의 문제는 집단의 이기적 논리나 정치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농어민의 기본권보장이나 기본권실현과 관련된 국가의 책무실현의 관점에서의 법률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부에 부여한 책무와 권한을 소홀히 한 결과로서 뉴라운드 출범에 대비하는 방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이라면 획기적 발상의 전환은 법적 책임의 규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1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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