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서리 편법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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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2016.03.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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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시론 제34호]

 

법치시론 제34호는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헌법학)의 동아일보 2002. 7. 17 시론을 전재한 것임을 밝힌다.

 

총리서리 편법 이제 그만

 

대통령이 국회 임명동의를 받기 전에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해 헌법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국무총리서리 제도는 관행이라고 해 합헌이라고 주장하고 한나라당은 국무총리서리 제도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무총리서리 제도는 과거의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위헌 불법이다. 건국 후 초대 국무총리 임명에 있어 국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자 새 후보자를 지명해 국회 인준을 받은 다음 조각한 선례가 있다. 그 동안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이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기피하기 위해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한 것은 위헌적인 관례였기 때문에 이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헌법에 위반되는 잘못된 관행

김영삼 전 대통령 하에서는 국무총리서리 제도를 폐지했었는데 다시 이 정부 들어 국무총리서리 제도를 남용하고 있어 문제다. 이 정권 들어 첫 국무총리서리는 김종필씨였다. 국무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 표결 중 국회가 개표를 하지 않고 폐회했기 때문에 부득이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헌법재판소는 국무총리서리 제도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게 되었다. 당시 5인의 재판관은 소를 제기한 국회의원이 권한심판의 당사자 적격이 없다고 해 각하를 주장해 사건의 본안 판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에게 권한쟁의심판의 당사자 적격을 인정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태도가 주목된다.

당시에도 3인의 헌법재판관은 “국무총리 임명은 대통령의 단독행위에 국회가 단순히 부수적으로 협력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국회가 대통령과 공동으로 임명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국회의 동의는 국무총리 임명에 있어 불가결한 본질적 요건으로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없이 국무총리를 임명했다면 그 임명 행위는 명백히 헌법에 위배되고, 이러한 법리는 국무총리 대신 국무총리 ‘서리’라는 이름으로 임명했다고 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 때도 대통령은 국무총리 ‘서리’의 제청없이 퇴임하는 전 정권의 고건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새 정부를 구성하는 희극을 연출했다. 국무위원의 임명에 ‘서리’의 제청은 불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 ‘서리’가 과연 다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합헌인가. 김종필 총리서리의 경우에는 정권교체기였기에 국무총리 직무대리자가 없었고 국회도 폐회됐기 때문에 부득이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곧 국회를 소집해 임명동의를 받았어야 했는데 6개월이나 ‘서리’제도를 연장시킨 것은 위헌이라고 하겠다.

이번 개각은 사전에 예고되어 있었던 바이고, 긴급한 교체의 필요성도 없었다. 따라서 국무총리가 사임한 것이라면 정부조직법에 따라 직무대행자를 선임해 행정의 공백을 메우고, 총리 후보자를 지명해 국회의 동의를 얻은 뒤에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새 총리의 제청에 따라 새 국무위원을 임명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이러한 절차를 알고 있으면서도 국무총리 서리를 지명한 것은 공무원인사권을 대통령의 독자적 권한으로 오인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대통령의 공무원임명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임명해야 하는 구속을 받으며 자격요건이나 절차에 위반되면 위헌무효라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을 독단으로 임명했던 관례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낳았던 것이다.

앞으로는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해 국무총리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서리’가 국무총리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기정사실을 만들어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임명동의를 받아야 할 지명자가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권은 행사하지 못하면서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하겠다.

국회동의전 권한행사는 안돼

국무총리는 단순한 대통령의 보좌관이 아니다. 국무회의의 부의장이며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권을 가지며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권을 갖고 있다. 국무총리는 행정에 대해 국회에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국무총리가 명색이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 책임정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서는 그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기 위해 헌법 개정까지 주장되고 있으나 헌법 개정은 어려우므로 우선 정부조직법과 공무원법부터 개정해 국무총리의 권한을 확대해야 하겠다. 대통령의 자의적 국무위원 임명을 억제하기 위해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국무위원 해임건의권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 행정공무원의 임명권을 국무총리에게 위임하는 것도 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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