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한국의 토지 및 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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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의 토지 및 부동산 정책

 

(사)한국토지공법학회 회장 석종현(단국대 명예교수)

 

지난해 말 장성택 처형, 국정원장의 ‘2015년 조국통일’ 발언, 새해 들어 조선일보의 ‘통일 기획시리즈’로 촉발된 통일논의, 그리고 박근혜대통령의 ‘통일대박’ 신년 기자회견이 줄을 이었다. 이후 여당이 통일헌법 연구에 착수하고, 지금이 통일의 적기다’는 등 통일담론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통일헌법을 만들기 위한 법무․통일․법제처 등 ‘부처 협의체’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헌법국가에서의 국가적 통일은 헌법의 통일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통일헌법 연구는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통일헌법하에서 남북한의 토지법의 통합아 논의되어야 하지만, 본고에서는 통일한국의 토지 및 부동산정책에 참조 내지 고려해야할 방향을 동서독 통일의 예에서 살펴 보기로 한다.

 

한국의 토지이용은. 정부의 산업육성정책에 따른 경부고속도로건설에 이어, 서울 인천을 잇는 경인고속도로 건설 등 6개의 광역고속도로가 신설, 확장되었는가 하면, 서울 부산간 KTX고속철도 건설을 비롯한 철도산업의 고도화 정책, 항만시설의 대대적인 신설 및 확장, 산업단제 조성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이같은 토지이용의 팽창정책은 결국 토지의 확보를 어렵게 했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향후 국가 미래 차원에서 볼 때, 북한이나 155마일 휴전선 접경지역의 토지이용 정책수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에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 남북화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남북간 통일 이후의 북한토지의 효율적 이용방안 정책 수립이 시급히 요구된다 할 것이다.

다만 남북한 간의 토지제도가 대별된다는 점, 이른바 남한의 토지는 사유재산과 국유재산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북한의 경우 사유재산제도가 전면 부정되고, 국가 소유와 사회협동단체의 소유만을 인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토지유형의 대부분이 산림토지와 농업토지가 차지하고 있어 그에 대한 대응은 획기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북한의 경우 도시용 토지는 상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고, 토지이용 현황 100% 대비 기준으로 볼 때, 농업용토지 16.4%, 주민주거토지 1.0%, 산림토지 74.4%, 산업토지 1.4%, 수역토지 5.7%, 특수토지 1.1%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 이후의 북한토지 이용의 경제적 가치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는 북한의 토지소유권 문제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북한은 1946년 3월에 {토지개혁 개혁에 관한 법령}을 공포, 같은 해 3월8일부터 3월31일에 토지개혁을 단행하는, 이른바 북한의 토지개혁 범주에 농지 뿐만 아니라 산림, 강산, 공장 등 전 국토를 대상으로 토지 전반의 몰수를 통해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무상몰수와 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하였고, 그 결과 개인의 토지소유가 인정될 수 없었다. 특히 토지행정과 시스템에 있어서, 우리 한국정부의 토지행정과는 달리, 지적측량 및 지적제도가 없다는 점이고, 토지대장 및 건물등록대장 만을 작성하여 활용하고 있는 정도로써, 토지등록대장, 토지이용허가정리부, 토지경력서, 지적도, 토양도, 토지설계도 등이 존재하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토지행정 제도는, 소유권회복, 소유제도의 개편, 보상문제 등 복잡한 문재점이 발생하게 되며, 이에 따른 법적분쟁 및 손실보상에 따른 통일비용의 증가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남북한간의 토지정책 이질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방안은 통일독일의 토지정책 제도에서 하나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이후의 토지 재산처리 과정을 보면, 우월한 경제력을 토대로, 과감한 정치적 결단으로 통일을 성취했고, 그 과정에서 독일 국민 각자가 엄청난 고난을 감내했다. 특히 재산권 문제에 있어서, 동부독일의 경제질서가 자본주의체제인 서부독일의 경제질서에 흡수됨으로써, 동부독일에 대한 사유화 조치와 함께 과거 동독지역의 반법치주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처리가 요구되었는가 하면, 재산권침해행위와 관련한 서독의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과거청산문제는 동서독간의 재산권 문제의 핵심으로 부각되면서 통일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했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통일후 재산권분쟁 문제에 대하여 사유재산의 보장원리와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을 사유화 하기 위한 보상방법과 정도에 따른 공유재산 및 공공재산으로의 이전문제는 동독의 제도는 참조하지 않은 채, 서독의 기본법에 의해 처리했다. 이는 서독의 우월한 경제력을 토대로 한 통일정책의 일관된 방안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독일정부에 의해 침해된 재산권에 대하여 사유화 방안과 원상회복 등을 통한 재 사유화 방안이 쉽게 해결되지 않은 까닭으로 미해결 재산이 많았었다는 점도 향후 남북한 통일이후의 재산권정리 방안에 고찰해 볼 사항임이 분명하다.

 

독일통일 정부는 1990년 6월 15일 동서독 정부의 공동성명과 1990년 8월31일 체결된 통일조약 제41조 제1항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하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 합의했다.

첫째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점령법 또는 점령고권에 의한 몰수는 원상회복되지 아니한다.

둘째 동독이 행한 몰수 또는 몰수에 준하는 침해 가운데 자연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주소를 동독지역 밖에 가지고 있거나, 경찰에 전출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비합법적으로 동독지역을 떠난 사람만 대상으로 행하여진 경우에만 심사 및 반환대상으로 한다.

셋째 몰수된 부동산은 원칙적으로 반환되지만 자연인 이외에, 종교단체, 공익재단 같은 부동산에 대하여 소유권 또는 물권적 이용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경우에도 반환하지 아니한다.

넷째 국가의 강제관리는 폐지된다.

다섯째 정당한 방법으로 성립된 임대차 또는 용익관계는 소유권의 반환 또는 국가의 강제관리의 폐지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

여섯째 미해결재산의 처리에 있어 나치정권의 피해자의 재산법상의 청구권도 포함한다.

일곱째 미해결 재산문제의 처리는 동독의 경제적 부흥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 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위와 같은 공동성명 방안을 실천하기 위하여 동독정부는 1990년 7월 11일 재산청구권의 신고에 관한 명령(신고령)을 공포하고, 몰수재산의 원소유자에 대한 원상회복 또는 보상을 위한 준비단계로서, 신고대상인 권리의 범위, 신고절차 등을 규정하였다.

이같은 기초적 방안에 더하여 통일독일의 토지분쟁 해결사례를 보면, 독일은 동.서독간의 통일을 한 후, 토지의 반환을 우선적 과제로 추진하여 구 소유자에게 반환하였고, 이것이 불가능한 경우 손상보상을 해주었으며, 통일 후 미해결재산의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인 독일의 신탁청은 1990년 구 동독의 산업적 경제적인 재산을 안고 등장하였으며, 통일 이후 구 동독의 자산가치로 최고 6천억 마르크에 이르는 기업과 부동산을 관리했던 독일 공법상 연방정부에 직속된 공법인으로 1994년까지 존속시켰다. 단 소유권이 불확실할 경우 경제개발단계에서 투자가 지연되고, 사회혼란이 야기되었으며, 1994년 3월31일 통일 후 4년간 구 토지소유 재산에 관한 반환소송이 222만건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생각건대 북한의 경우에도 독일과 같이 통일 후 토지몰수자에 의한 소유권반환청구소송 또는 손실보상의 문제 등의 법적 분쟁이 예상되며, 독일의 사례를 참조하여 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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