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삼성전자의 주주대표소송 판결의 문제점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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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   2016.03.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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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삼성전자의 주주대표소송 판결의 문제점 검토

12월 27일 수원지방법원은 이른바 삼성전자에 대한 주주대표소송과 관련하여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즉, 11명의 전․현직 경영진에게 총 977억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참여연대 등 원고측은 환호, 경제계는 우려를 표하는 등 판결에 대한 반응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1심판결은 최종심이 아닌데,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소심을 거쳐 상고심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받게 되는 경우에도 언론이 대서특필할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번 판결은 회사의 경영판단 자체를 사법판단의 대상으로 하였으나, 그러나 고도의 판단과 위험이 수반되는 경영의사결정은 사법적 판단에 친숙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판결은 법을 적용하여 무엇이 정당한 법인지를 선언하는 국가작용인데, 경영판단은 회사의 경영권에 속하며, 그 판단은 규범적 규율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법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법작용인 재판이 그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서 ‘非法的 問題’마저 판단하는 경우에 그 자체로서 사법적 정의에 반하기 때문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권력은 현행의 헌법질서하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는데, 재판은 법적 문제에 한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사법권의 본질적 한계에 속한다 할 것이다. 법원은 기업의 경영의사결정 과정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지만, 실패한 경영판단에 대해서까지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실패한 경영판단에 대해서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경우 경영의 위축을 초래하게 되며, 특히 개개인에 대한 고액의 배상책임을 부과할 경우 경영자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여 의욕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 확립되어 있다(Business Judgement Rule). 이같은 원칙하에 미국의 경우 대표소송 제기시 이사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소 제기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으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원회의 판단에 의해서도 존중되고 있다.

 

경영판단의 문제를 공행정과 대비하여 보면 그것은 공무원의 정책판단의 문제가 되는데, 행정업무 중에도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성을 요하는 판단작용이 많은데, 이와 같은 전문적 판단에 대해서는 공무원의 판단을 법원이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判斷의 餘地 理論이 확립되어 있다. 이처럼 판단의 여지가 인정되면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게 되므로 판단작용에 대한 법적 책임이 부인되는 것이다.

 

또한 국가배상법 역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행위로 인하여 생긴 손해에 대하여 국가가 배상책임을 진 경우에 공무원에 대한 구상권을 인정한 취지와 유사하다. 그런데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인정하지만, 경과실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과실의 경우에도 구상권을 인정하게 되면 공무원에게 너무 가혹함은 물론 공무집행이 오히려 위축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리에 의하면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임원들의 고의나 중과실로 인해 생긴 손해가 아니라면 삼성전자가 임원들에게 손해배상을 받도록 한 이번 수원지법의 판결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판결은 삼성전자에게 그 소속 임원들이 배상책임을 지는 경우인데, 주지하듯이 삼성전자는 세계적 우량기업이고 이처럼 우량기업을 만든 사람들이 이번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 임원들이다. 임원들이 경영판단과 관련하여 생긴 손해부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면, 그 반대로 영업이익부분에 대한 배분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런데 후자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면서 책임만 지라는 것은 우리의 법감정에 맞지 않음은 물론 형평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임원들은 고도의 위험성을 수반하는 경영판단을 가급적 피하고자 할 것이며, 그 결과 기업가정신은 위축될 수 밖에 없게 된다.

 

기업의 경영의사결정은 항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며,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이므로 그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법원이 경영판단의 당부에 대해서 오로지 법적 관점에서 판단하여 그 실패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일이 묻게 된다면 누가 의욕적으로 기업을 하겠다고 할 것인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적 판단의 한계에 대하여 사법부가 새롭게 인식하고 진지하게 검토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중앙일보 2002.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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