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숙제남긴 ‘張裳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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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2016.03.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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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시론 제37호]

 

법치시론 제37호는 鄭宗燮교수(서울대)가 조선일보(2002.8.1.) 기고문을 전재하였음을 밝힌다.

 

 

[기고] 숙제남긴 ‘張裳청문회’ .

 

 

국무총리 피지명자인 장상(張裳)씨에 대한 국회 동의가 부결되었다. 찬성 100표, 반대 142표로 반대표는 참여한 야당의원 125명보다 17표가 더 많다. 국무총리 임명의 동의절차에서 국회의 인사청문을 실시한 첫 사례에서 국회가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는 국회가 자유투표(cross-voting)를 실시하여 더 의미가 깊다. 국회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이지 정당의 하수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두고 야당의 독주라거나 여당의 ‘반란’표 운운하는 것은 정쟁적인 시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회의원들이 종래 정당의 하수인으로 활동하던 수준에서 점차 벗어나 국민대표로서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긍정적인 양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런 안건에 대해 국회가 부결하거나 가결하는 것은 헌법이 권력분립 원리에 따라 인정하고 있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절차이므로 이를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으로 부각시키는 것도 지극히 정쟁을 부추기는 발상이다. 이런 일로 정국이 경색돼야 할 이유도 없다.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거부되면 대통령은 더 적합한 다른 사람을 지명하여 국회에 임명동의를 다시 요청하면 된다. 다만 우리 헌법상의 국무총리의 역할과 지위를 정확히 고려하여 정권 말기의 현 단계에 적합한 국무총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신중하게 찾아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수긍하지 못할 인물을 내놓고 밀어붙이기로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은 과거 독재시절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일 뿐 아니라 이 시기에 괜히 쓸모없는 일을 벌이는 것이다.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국무총리 임명에 대한 국회의 사전동의 제도는 국무총리의 임명에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관여하게 하고, 강력한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권력통제 장치이며, 대통령의 유고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자에게 간접적이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국무총리에 지명(nomination)되어 임명(appointment)의 동의를 기다리는 자가 ‘국무총리 서리’라는 이름으로 국무총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헌법위반이다. 대통령이 이런 위헌행위를 하도록 직접 지시하면 탄핵사유가 된다. 이번에 경험했듯이, 국무총리도 아닌 사람이 그간 국무총리의 업무를 수행한 것의 법적 효과를 따져 보면, ‘국무총리 서리’라는 허무직(虛無職)의 행위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대통령이 아닌 자가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쫓겨난 것과 마찬가지다.

헌법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임명직 공무원이다. 국무총리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영의정이나 되는 것처럼 국민을 우습게 보는 봉건적이고 신분제적인 발상으로 잘못된 것이다. 우리 헌법상 국무총리직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유고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해야 할 역할이다. 따라서 국무총리의 자리는 공석으로 있을 수 없고 직무대행을 해서라도 국무총리직이 수행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전임 국무총리가 사임하고 아직 국무총리가 임명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정부조직법의 직무대행 규정에 따라 제1순위인 재경부장관이 겸임하는 부총리가 총리직을 대행해야 한다. 대행사유에 ‘사고’라고 된 것은 궐위를 포함한다. 현 헌법상 대통령 권한대행에서는 궐위와 사고를 나누어 정하고 있으나, 나머지 공무원의 직무대행에서는 모두 사고만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직무대리의 법리에 따를 때 이런 경우의 ‘사고’에는 궐위도 포함된다. 2000년 5월 박태준 총리가 물러나고 이한동씨가 아직 총리로 지명되기 전에 당시 제1순위자였던 이헌재 재경부장관이 자동으로 총리직무대행자가 되어 총리직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간명한 일은 정직하게 처리하면 된다. (鄭宗燮/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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