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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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잎새에 이는 바람입니다.

겉부터 흔들리는 잎사귀입니다.

바람이 강도를 잃으면,

끝내 속에 있는 잎사귀를 흔들지 못합니다.

 

키가 큰 나무입니다.

땅에서 끌어올리는 물입니다.

밀어서 올린다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두레박을 뜨듯 끌어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잎사귀가 흔들거려서 펌프질을 하는 것입니다.

가벼운 잎사귀의 흔들림이 거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밤에 출항하는 배입니다.

새벽에 만선으로 귀향하는 꿈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손흔들어 주지 않는 어두운 밤입니다.

그 밤에 항해를 떠나도 외롭지 않은 이유입니다.

만선이든 공치던 그 언젠가의 귀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항하는 배는 요동을 칩니다.

거대할수록 흔들리면서 제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마치 이륙하는 비행기가 더 흔들리는 것처럼,

흔들렸으니 평화로운 것입니다.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기에,

멈추어 조용해질 시간이 더 가까운 것입니다.

파도가 더욱 거칠기에,

고기잡이 나서야 하는 시간이 가까운 것입니다.

 

허허벌판에 한 그루 나무가 서 있습니다.

잔혹했던 파괴를 겪었을 것입니다.

폐허의 그 황량함을 혼자서 오롯이 겪었을 것입니다.

잔풀이 자라나기 시작하였고,

멀리 잊혀진 기억들이 되살아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나무이니 아무것도 전하지 못합니다.

나무에게 남아있는 기억이 인간에겐 잊혀진 기억이 되고 맙니다.

 

폐허위에 선 나무가 그렇습니다.

행여 길손이 더위에 지치면 그늘이 되어 줍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시원한 것입니다.

그 아래에서 농부는 한 낮의 더위를 이기는 것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바뀌어도 나무는 그대로인 것입니다.

나무가 지난 시간을 더 많이 꿰뚫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이 한줄금 붑니다.

어디에서 달려온 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폐허를 지킨 나무앞에서 멈춥니다.

지난 시간의 자신의 흔적을 탐색하고 싶은 것인가 봅니다.

어디로 달려갈 지를 알 수도 없습니다.

폐허를 지킨 나무에서 출발한 바람인가 봅니다.

나무가 잎새를 흔들어 일으킨 바람인 것인가 봅니다.

 

나무가 곧 바람이 됩니다.

세차게 달려온 바람은 나무에 멈추고,

세차게 달려나갈 바람이 나무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언제라도 나무를 보면,

그 무엇인가의 감정의 교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무의 상념을 어떻게던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나무는 그저 잎새만 흔들 뿐입니다.

흔들림이 멈추지 않는 한 나무는 자랄 것입니다.

 

흔들면서 성장하는 나무인데,

흔들리면 변절하는 인간입니다.

인간이 나무에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홀로 서서 세월의 풍상을 견디는 나무가 애처로운 것이 아니라,

함께 있으면서도 수시로 변절하는 인간이 더욱 가소로운 것입니다.

홀로 서 있으면서도 그늘을 주는 나무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여럿이 있으면서도 자기 이속만 챙기려는 인간이니 더욱 고독한 것입니다.

 

정극원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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