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종현 회장 회고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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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   2016.03.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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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95년 슈파이어학술대회에서 페터 훼벌레 교수를 처음 만났는데, 훼벌레교수는 제가 독일의 대학에서 2개의 학위를 취득한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서 존경의 뜻을 표하면서, 자기가 발행인으로 있는 학술지에 논문투고를 요청하였습니다.

 

독일교수들은 대체로 제가 2개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실과 21판을 넘은 행정법 저서의 판수를 보고는 대등한 공법학도로서 파트너로 인정함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들이 사제의 관계를 대등한 파트너의 관계로 전환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아전인수식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후학들이 참조해야할 일이라 믿어 감히 회고해 보왔습니다. 제가 이룩한 이 발판을 디딤돌로 하여 앞으로 더욱 더 발전된 한독간 학술교류가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저의 정년을 대비하여 그 연결고리들을 미리 만들어 놓았으며, 그것이 한독학술대회의 정례적 개최를 확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99월에는 독일 국립슈파이어대학에서 한독국제학술대회가 공법영역에서 갈등조정의 수단과 방법으로서 중재’(Mediation als Methode und Instrumente der Konfliktmittlung im öffentlichen Sektor)를 주제로 개최될 예정에 있고, 한국측에서 8(은숭표, 김해룡, 김성수, 김상겸, 송동수, 강현호, 김현준, 석종현)의 학자들이 각각 주제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학문활동을 하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 몇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저는 1970년대에 독일에서 유학하였고, 행정법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로는 사실상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9년에 단국대 행정법 교수가 된 이후 유심히 살펴보니 저의 선배님들과 저와의 나이차가 거의 10년이상 있었습니다. 후배들도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무풍지대에서 큰 비판을 받지 아니하고 초학자의 토대를 구축하는 행운을 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1986년에 행정법 저서를 출간하였으니, 제 나이가 40대 중반에 접어 들때입니다. 당시만 해도 40대의 젊은 학자가 교과서를 출간하는 그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학문이 어느 정도 성숙한 50대 이후에나 교과서 집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행정법 저서는 1988년을 기점으로 하여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40대 저자의 저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하나의 저서가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은 교재 시장의 판도변화를 수반하며, 이에 따라 선배교수님들의 행정법교재들이 판매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매우 섭섭하게 생각할 일이라 늦었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1983년에 이미 신토지공법론이라는 교재를 출간하였으며, 당시의 수험가로부터 선풍적 인기를 얻기도 하였으며, 부동산분야 자격시험 수험생들이 저의 저서를 바이블로 평가해 주었습니다. 이 사실들이 1984년에 가서 토지공법학회를 창립하는데 결정적인 계기와 바탕이 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배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저서와 바이블로 인정받는 저서를 가졌던 저는 아주 행복한 공법학자, 토지공법학자였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토지공법학회의 성공적인 정착과 토지공법학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우리 학회의 학술활동은 회원 모두의 정성과 애정이 남긴 결정체라는 점에서 회원 모두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여러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의 봉정식은 저의 제자들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토지공법학회의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학회 차원에서 추진한 것이어서, 저는 매우 영광스럽고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의 법학교수 30년은 참으로 행복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들과 같은 제자인 송동수 교수가 저의 곁에서 그리고 동료교수로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송동수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서울대학교에 비교할 수 있는 독일의 본대학교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송교수는 본인 스스로 저서 집필의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저서를 공저자로 승계하는 일을 맡아 주었습니다.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송교수와는 79학번 동기인 신봉기 교수는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헌법재판소 연구관보 및 동아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는 경북대학교에서 재직하고 있습니다. 신교수는 토지공법학회 부회장이며, 타 학회에서도 총무이사, 연구이사 등의 직책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단국대 제자 중 법학교수로는 차정화 교수, 오현진교수, 손우태 교수, 신봉기 교수, 송동수 교수, 이영우 교수, 조인성 교수, 정회근 교수, 최용전 교수, 이재삼교수, 전일주교수, 김도협 교수, 이현준 교수, 박만규 교수 등이 있습니다.

 

저는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조선대, 충남대 등에서 모두 43명의 박사제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단국대 박사제자 29명과 타대학 박사제자 43명을 합쳐 72명의 제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저는 학문을 하는 동안 앞만 바라보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듯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학문을 하면서 현실과 학문과의 괴리현상, 강단법학에서 말하는 법치주의와 현실에서의 법치주의에 괴리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자괴감을 가진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연구활동의 방법에 대해서 많은 고민도 하였습니다. 우리 학자들의 연구업적이나 저서들이 수험법학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학문과 학자들의 권위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학문의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공법적 현실문제에 대하여 답을 줄 수 있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산학협동적 그리고 관한협동적 연구를 토대로 하는 실천법학 내지 살아 있는 법학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판사들이 재판을 하다가 판례가 없어 법리적용에 고민을 하게 될 때 그에 대한 학리적 정답이 교과서에 있거나 연구업적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조실무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한 정답을 대부분 제공할 수 있는 학문으로 평가받게 된다면 앞에서 말한 괴리의 문제는 없어지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오늘날 법치국가에서 법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하지 아니하지만, 법학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는 현상이 보통입니다. 의학을 전공한 자만이 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지만, 법학을 전공한 자만이 법조인이 되어 환자(법제도)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는 쉽게 긍정하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법학의 위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법학도들이 일정한 역할과 기능을 담당해야 할 사회영역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영역을 비법학도들이 장악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009년은 한국의 법학교육 역사에 있어 이른바 로스쿨이 시작되는 원년입니다. 로스쿨제도가 도입된 후 우여곡절 끝에 예비인가를 받은 대학들의 법학전문대학원이 출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과대학과 로스쿨의 병존, 향후는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의 병존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기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실무위주의 로스쿨 교육이 학문으로써의 법학을 고사하게 하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위기감도 생기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로스쿨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한국법학교수회 수석부회장의 입장에서 로스쿨도입을 찬성하는 법학교수들의 절대다수의 찬성 설문결과 때문에 공적으로 찬성론자가 되어 제도 도입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 로스쿨법을 통과시키는 결과를 얻어 냈습니다. 한국법학교수회의 공적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개인의 소신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점에 대하여 회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로스쿨제도가 성공적인 정착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생길 비난과 비판이 걱정이 되어 미리 입장을 밝혀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년을 맞이하면서 저의 오늘이 있기 까지에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큰 바탕이 되었기에 이 기회를 빌어 아내와 가족들에게 그 영광을 돌리며, 아울러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난 세월에 대한 용서와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내 사전에는 주말, 공휴일 및 휴가도 없다는 생각을 실천하면서 제 자신은 약간의 학문적 성취감과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아내와 자녀들에게는 그 모두가 아름다운 기억이 된 것은 아니므로 지금 회고하니 회한이 생기며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하루만이라도 출근하지 말고 집에 있어 달라고 조르는 아내의 소원을 아직까지도 들어 주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내조해 주는 아내에게 사랑하다는 말을 해 주고자 합니다.

 

회고사가 길어져 대단히 죄송합니다.

 

끝으로 바쁜 시간을 내어 봉정식 행사에 참석해 주신 래빈들과 회원님들에게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에게 정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제 밀린 연구활동에 보다 정진하면서 국가를 위해 무언가 보탬이 되는 큰 일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단국대학교는 새 학기부터 저를 석좌교수, 행정법무대학원에서는 인허가 부동산법률 전문가 특별과정의 주임교수로 발령할 예정이며, 연구실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4월 출범하는 부동산신탁회사에 사외이사의 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1일부터는 ()대보산업기획의 고문으로 취임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삼동의 토지공법학회와 한국법제발전연구소의 사무실은 계속하여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함없는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면서 지켜 봐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 02.17.

 

 

사단법인 한국토지공법학회 회장 석 종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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